Public Project
Another Family
But is this “resolution” real?
Eleven years: the time it took for factory workers and their families to extract an apology from Samsung Electronics. The fight to unmask the company’s misconduct—its intentional, systematic disregard of worker health and safety in its semiconductor and LCD plants—began with the death of a semiconductor worker from acute leukemia. On March 6, 2007, Hwang Yumi, just 23 years old, died in her father’s taxi on the way to the hospital. Her father, Hwang Sang-ki, pledged to hold the company accountable for its neglect and lies. The campaign grew at a slow but assured pace. Other victims made themselves known, and in this way, one person’s struggle became universal. For eleven years, ailing factory workers and family members of the deceased faced the most powerful of adversaries. Samsung employed its industrial might to minimize and obscure its wrongs; Korea’s workers’ compensation and welfare agency, which ostensibly protects and supports employees, repeatedly rejected the victims’ applications for redress; and the courts dismissed the victims’ lawsuits. Most major Korean news outlets ignored the story, for fear of losing advertising dollars. And members of the public criticized the factory workers for daring to undermine the Korean economy, and accused them of being agents of a shadowy, treacherous organization. Worst of all, all of the efforts to close a settlement agreement since 2013 collapsed in less than two years, and fissures emerged among the community of victims. Those who remained in the fight, however, pressed on. In time, their voices were amplified, and public sympathy and solidarity grew—to the point that Samsung was forced to respond with an apology and compensation.
I began “Another Family” in 2013, as a photographic record of the workers’ suffering and death, courage and struggle, dignity and fortitude. My goal, from the start, was simple and clear: to visually document their experiences without bias, without imposing a certain “frame,” and to share their stories with as many people as possible to help bring about change. An acquaintance offered a piece of advice. “Why would you ruin your career by doing this kind of work? It’s like throwing eggs at a rock—you’ll only destroy the eggs, and nothing will happen to the rock. I mean, if your goal is just to coat a rock in yolk, be my guest.” I had no rebuttal; “throwing eggs at a rock” was right. But what if it wasn’t one egg, or two or three or a few dozen, but hundreds or thousands of eggs? A rock thus encrusted would attract attention. People would ask what, exactly, was going on. My project might be understood as doing the work of one of those many eggs; I can’t be sure. But I am heartened by the fact that the world now knows what has transpired.
Back to November 23, 2018. As the ceremony marking an apology and settlement winds down, representatives of Samsung and the victims gather for a group photo. On the official schedule, this is called a “commemorative photograph,” but the legal agreement is already in place. The actual purpose the photo is evidentiary: it announces to the world that both sides have signed, and shaken hands on, an agreement. A true commemoration, by contrast, demands that we remember the victims’ pain, their deaths, their courage and will to stand up to power; that workers’ rights and safety are guaranteed, while businesses that flout the law are duly punished; and that corporate monitoring be systematically embedded in Korean society. Only then would such a photograph be “commemorative”—a celebration of social progress and a catalyst for citizen awareness and action.
As soon as a problem is “resolved,” we lose our ability to reflect. We seem to forget everything: what the problem was, its genesis and climax, the sacrifices that were involved, and how it was all addressed. This erasure leads to a tragic repetition and diminished reasoning and sympathy; promised reforms never occur. It’s in the interest of perpetrators to accelerate this erasure, and the more powerful they are, the greater the risk of oblivion. The story that unfolded over eleven years, of Samsung semiconductor and LCD factory workers and their families, must continue to be discussed and remembered. This responsibility lies with each of us—for, “To cause awareness is our only strength.”*
According to “Banolim”, also known as “SHARPS”(Supporters for the Health And Rights of People in the Semiconductor industry), 559 employees were diagnosed with incurable conditions, including leukemia, brain tumors, breast cancer, and multiple sclerosis, as of May 2019, and 174 of them are now deceased. Samsung Electronics has agreed to compensate victims in the amount of 50 billion Korean Won, or approximately $43 million. This represents 0.09 per cent of Samsung Electronics’ profits in 2017—the equivalent of eight hours of company earnings. It is an unsatisfying figure, but one large enough to peel the scales from our eyes.
* W. Eugene Smith, “Minamata,” 1975.
2018년 11월 23일 한국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현 부회장) 김기남이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공장 피해노동자들과 유족들에게 사과문을 낭독했다. 김사장은 회의장에 참석한 피해 당사자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사죄 인사를 했다. 피해자들은 이에 대해 눈물과 깊은 한숨 그리고 가시지 않은 분노를 보였다. 양측의 악수, 그리고 사죄와 수용의 자리를 마무리하는 협약식 기념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곧이어 분쟁의 종결을 알리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과연 '종결'된 것인가.
11년. 삼성전자 대표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피해자와 가족들이 투쟁해온 시간이다. 삼성이 반도체 및 LCD 공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방치하고 그들이 처한 위험과 죽음을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은폐해온 행위를 세상에 알리는 투쟁은,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한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2007년 3월 6일 급성백혈병을 앓던 황유미 씨는 택시기사인 아버지 황상기 씨가 병원을 향해 운전하는 택시 안에서 23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심지어 사실을 왜곡하려는 회사에 분노한 황씨는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노라 다짐하고 삼성과의 투쟁을 시작했다.
이 투쟁은 아주 느리게, 그러나 확실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면서, 혼자였던 싸움은 피해자들 모두의 싸움으로 커져갔다.
살아남은 피해자들과 피해자를 죽음으로 잃은 가족들은 11년 간 많은 거대한 적들과 싸워야만 했다. 삼성은 막강한 권력으로 그들이 저지른 행위를 끊임없이 축소 은폐했고, 노동자를 사측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원해야하는 근로복지공단은 피해자들의 산업재해신청을 지속적으로 불승인했으며 법원은 피해자들의 소송들을 기각했다. 이런 부당함을 알려야 하는 국내 주요 언론들 대부분은 결코 최대 광고주의 심기를 건드리는 보도는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경제의 대들보를 감히 흠잡는다며 비난하고 불순단체의 선동이라며 모욕하기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2013년에 어렵게 시작된 피해자들과 삼성 간의 협상은 2년도 채 안되어 무산되었고 피해자들 사이에도 균열이 생기고 와해가 일어났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결코 주저앉지 않고 투쟁을 이어나갔다. 다행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의 목소리가 전해졌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목소리 역시 커져갔다. 작았던 목소리는 이윽고 큰 울림이 되어 삼성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Another Family>. 2013년부터 이어온 이 작업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죽음, 용기와 투쟁, 존엄과 불굴의 정신에 대한 사진 기록이다. 작업을 시작할 당시의 목표는 단순 명확했다. 피해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특정 ‘프레임’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오직 카메라를 통해 직접 목격하고 사진으로 기록할 것, 그 결과물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의 사유와 행동의 변화를 촉구할 것.
지인 중 한 사람은 충고했다. "왜 이런 작업을 해서 스스로의 경력을 망치려 하는가? 바위에 계란을 던져 봤자 흠집도 못 내고 박살날 뿐이다.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바위에 계란 노른자건 흰자건 묻히기라도 하고프면 말리지는 않겠다." 이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바위에 계란 던지기’가 맞으니까. 그러나 한 개가 아닌 두세 개, 수십 개, 더 나아가 수백 개, 수천 개를 던지면 그 바위는 계란 범벅이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계란으로 범벅된 바위를 쳐다보기 시작할 것이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작업이 수많은 계란 중 한 개의 역할이라도 제대로 해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상이 알게 되었음은 확실하다.
다시 2018년 11월 23일. 사과문 발표와 협약식을 마무리하며 삼성과 피해자들이 단체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은 공식일정상 '기념사진'으로 불리지만 그 전에 분쟁이 일단락되었고 양측이 협약서에 서명을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증거사진으로서 작동한다. 이 사진이 진정한 '기념사진'이 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깊은 고통과 수많은 죽음,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무소불위의 힘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용기와 의지가 잊혀져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인권과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무시하는 기업에 대한 무관용적인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만행을 미연에 막기 위해 철저한 감시가 작동되는 제도 역시 한국사회에 장착되어야 한다. 그때 이 사진은 한국사회가 한걸음 더 진보했음을 ‘기념’ 하는 사진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시민 각자의 자각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촉매제로서도 작동할 것이다.
모든 것이 해결 되었다고 이야기되는 순간,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로 인해 어떠한 대립과 충돌 그리고 희생이 있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등을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든 것들을 망각하기 시작한다. 망각은 문제에 대한 사유와 공감, 이에서 비롯되는 행동의 변화를 침식하고 소멸시켜 버림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똑같은 문제와 비극을 반복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는 망각을 촉진하며, 이는 가해자가 지닌 힘에 제곱 비례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공장 피해노동자들과 가족들의 11년간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보다 더 이야기 되어야하고 기억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책무이다. ‘자각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힘이기에’.*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 전자 반도체, LCD, 계열사 등에서 백혈병, 뇌종양, 유방암, 다발성 경화증 등의 난치병에 걸린 피해자 수는 2019년 5월 기준 559명에 달하며 이 중 174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가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으로 마련하기로 한 금액은 500억 원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2017년 영업이익의 0.09%이며 당사가 8시간 동안 벌어들이는 액수다. 납득하기에 충분치 않은 숫자일 수 있으나 우리 스스로가 각성하기에 충분한 숫자다.
*: "To cause awareness is our only strength.” W. Eugene Smith, from Minamata, 1975.
14,755